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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6.25전쟁 그리고 노근리학살사건'현장

미루s 2018. 12. 10.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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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6.25전쟁 그리고 노근리사건'현장



경북 김천에서 대전으로 향하던 중

삭막하게만 느껴지는 고속도로가 아닌

추풍령 옛길을 지나 국도로 대전을 가다가 우연찮게 들리게 된

'충북 영동군 노근리'







커다랗게 설치된 간판을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를 세웠다.


'이곳은 노근리사건 현장 입니다'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이 다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많은 양민들이 피살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한달 만인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후퇴하던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과 피난민들을 굴다리 안에 모아 놓고 집단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총탄 흔적이 남아있어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대학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된 쌍굴다리






쌍굴다리 앞에는 노근리 사건 안내판이 설치되어있다.


사건 개요부터 위치도까지 상세히 적혀있어, 노근리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현장에 와서 안내판을 읽으면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던거로 기억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제대로 알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4번국도에서 쌍굴다리로 들어가보면

수많은 총탄 흔적들이 O , △ 표시로 마킹이 되어있다.

총알이 박힌자리, 튕겨져 나온 자리 등을 표시한거라고 하는데,




세모 표시를 보면 넘버링이 되어있다.

세모표시가 탄환이 박힌 자리라고 한다.







쌍굴다리 위로는 철로가 놓여져있다.

지금도 운행 중인 철로...

그 아래로 걸어와보니 반대편도 수많은 총탄 흔적들로 가득하다.....


다리를 지나오는데 왠지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진다.




노근리사건 희생자 영위




노근리사건 희생자 유해발굴 안내판


날짜를 보니 2008년 11월...


그 뒤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걸까?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미군이 노근리의 경부선 철도 아래와 터널, 속칭 쌍굴다리 속에 피신하고 있던 인근 마을 주민 수백 명을 무차별 사격하여 300여 명이 살해당했다.


1999년 9월 미국 AP통신은 당시 미군은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 명령에 따라 학살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하였다. AP 통신의 보도는 비밀해제된 당시 군 작전명령 중에서 '그들(피난민들)을 적군으로 대하라'라는 명령의 원문(), 미군 제1기갑사단과 미군 육군 25사단 사령부의 명령서 등 미군의 공식문건 2건과 참전미군 병사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 사건은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사건이 외부에 처음 드러난 것은 1960년 민주당 정권 때 유족들이 미군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하면서였다. 당시 미군측은 소청을 기각하였고, 이 사건은 그대로 역사의 미궁 속에 묻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4년 4월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회' 위원장 정은용이 유족들의 비극을 담은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실록 소설을 출간하면서 이 사건은 다시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이 책에 주목한 《한겨레》은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그해 5월 4일자로 싣고, 7월 20일자에는 다시 집집마다 '떼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스케치기사로 실었다.

그후 월간지 《말》이 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하여 그해 7월호에 <6·25참전 미군의 충북 영동 양민 300여 명 학살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자세한 내막을 기사화하였다. 1996년 MBC는 《말》지의 취재내용을 바탕으로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다시 이 사건을 재조명하였다. 그러나 이후 국내 어떤 언론도 이 사건을 주목하지 않았다. 다만 《말》지가 1999년 6월호에서 <미 제1기병사단 병사들 마침내 입 열다> 제하의 기사로 다시 속보기사를 실었을 뿐이다.

1999년 말 유족들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미육군성은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유족들에 대한 보상문제를 한국측과 협의할 예정임을 밝혔다. 2000년 1월 9일 미국측 대책단장인 루이스 칼데라 미육군성 장관과 민간전문가 7명을 포함한 18명의 미국측 자문위원단이 내한하여 12일까지 한국측 조사반으로부터 사건개요 및 조사상황을 청취한 뒤 충청북도 영동의 사건현장을 찾아 피해 주민들의 증언과 요구사항을 들었다.

출처_ 노근리양민학살사건 [老斤里良民虐殺事件] (두산백과)




노근리 학살사건과 진상규명에 대해 잘 정리되어있는 기사가 있어 아래 링크를 남겨본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5007.html









국화꽃 흔적들...

많은 이들이 잊지않고 찾는듯하다.


다행인건 사건현장이던 쌍굴다리 바로 옆에 '노근리평화공원'이 잘 조성되어있었다는 것.

다음번엔 쌍굴다리와 함께 노근리 평화공원을 들릴 예정이다.


잊지말아야 할 역사, 노근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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